[곰브리치 세계사 上] 스파르타와 아테네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승리
-그리스 북부에서는 스파르타군이 동맹군과 함께 테르모필레라는 좁은 길목에 버티고 서서 페르시아군을 저지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스파르타인들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스파르타인들은 “직접 가져가시지.”라고 대답했다. 페르시아인들이 “우리에겐 화살이 아주 많아.”라고 위협하자 스파르타인들은 이렇게 답했다. “그것 참 잘됐군. 그럼 그늘 속에서 싸울 수 있잖아?” 하지만 어느 그리스인의 배신으로 페르시아 군대는 산을 넘는 오솔길을 알아냈고, 스파르타 군대는 오솔길로 돌아온 페르시아군에게 포위당했다. 스파르타군 300명과 동맹군 700명은 단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고 이 전투에서 쓰러졌다. 그것이 스파르타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기려 비석을 세웠고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 주오. 우리 모두는 여기 누웠으니, 조국의 법을 충실히 지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 이후 페르시아인들은 두 번 다시 그리스를 넘보지 못했다. 이 사실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페르시아인은 그리스인보다 더 사악하거나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그리스인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서아시아의 강대한 왕국들은 전승된 풍습과 교리에 지나칠 만큼 얽매였던 반면, 그리스인, 특히 아테네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들 사회에서는 일 년이 멀다하고 새로운 것이 등장했으며 어떠한 제도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라의 지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페르시아 전쟁의 위대한 영웅인 밀티아데스나 테미스토클레스도 그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한때 이들을 찬양하고 존경하면서 기념비까지 세워 주었으나 머지않아 탄핵과 비방의 대상으로 삼고 추방시켜 버렸다. 이런 점이 물론 장점은 아니겠지만 아테네인의 독특한 성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시험하며 결코 만족하거나 안주할 줄 모르는 것이 그들의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백 년 동안에 이 작은 도시 국가의 정신세계에서는 동방의 대제국들에서 천 년 동안에 일어나는 것보다 더 심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해 내고 그림과 시로 표현하고 시험해 보았던 모든 것, 당시의 젊은이와 원로들이 각기 광장과 의회에서 논하였던 모든 것은 오늘날까지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그리스 반도
- 소수의 작은 도시들만이 활발한 교역을 펼침, 나머지 지역은 황량한 산악지대, 곡식을 재배하기 쉽지 않은 돌투성이 들판
- 남부 : 도리아인 / 북부 : 이오니아인, 에올라인 거주
- 각각의 도시가 저마다 국가를 이루고 있었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음
- 그들을 결합시키는 것 : 종교와 스포츠 (긴밀히 연관)
1. 올림픽
- 최고신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성역(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열린 거대한 규모의 경기
- 첫 올림피아 경기 : B.C 776
2. 델포이의 신탁
- 태양신 아폴론의 성역. 화산지대 증기 -> 정신혼미
- 여사제 피티아의 말을 남자 사제들이 해석
스파르타
- 도리아인, B.C 1100년 경 그리스 반도로 이주
- 토착민 정복 후 노예로 삼음
- 노예의 수 > 스파르타인(주인)의 수 => 한 시도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음(두려움)
-> 강인하고 용맹해지는 것 : 리쿠르고스 법률로 정해 놓음
- 전사가 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죽임, 혹독한 훈련
- B.C 480 테르모필레 전투 승
아테네
- 의미있는 삶을 추구.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 후세에게 무언가 남겨 줄 수 있는 삶
- 스파르타와 달리 두려움의 대상이 없었음 ; 예외, 드라콘의 엄격한 법률
- 배를 타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아테네인, 오랜시간 참지 않음
- B.C 594 솔론의 헌법 : 민주주의(데모크라티아)
- 진정한 시민의 지배를 실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임. 다시금 자유를 잃을까봐 걱정하면서 두려움을 주는 모든 정치가들을 도시에서 추방시키는 한편, 특정 인물을 적극 지지해 독재자로 만들기도 함. 그러나 오래 안 가 모두 쫓겨남.
- 페르시아를 물리친 것도, 영웅 밀티아데스나 테미스토클래스를 저버린 것도 아테네 시민
- B.C 444 페리클레스 : 사실상 국가를 혼자 지배, 아테네를 해상 강국으로 유지, 이오니아의 다른 도시와 동맹을 맺음. 아테네인 부유해졌으며 그들의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시작
: 진리, 아름다움
- 민회에서의 토론 -> 논리, 사고의 힘을 키움 : 철학
- 예술 : 세상을 관찰하는 전례없는 새로운 방식(이집트: 거대, 초자연적)의 재현. 쓸데없는 기교와 거리가 먼 자연스러움과 고귀함과 우아함을 잃지 않음.
- 문학 : 지혜로운 생각 + 형식의 아름다움 ->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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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
- 스파르타 : 아테네 도시 풍비박산, 올리브나무 모두 제거
- 아테네 : 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스파르타 식민지 공략
- 아테네 패배, 그리스 전역 피해(승전국 포함)
- 델포이 근처 부족 아폴로 성역 점거, 약탈 -> 그리스 종교를 믿는 모든 부족의 싸움으로 악화
마케도니아인의 분란 참전
- 그리스 북부 산악지대
* 필리포스 왕 : 그리스 진군
- 데모스테네스(아테네)의 필리포스 공박이 있었으나 부족간 불화가 심해 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음
- 카이로네이아에서 승리
- B.C 338 그리스의 자유 종말
내용 출처 : 알라딘 eBook <곰브리치 세계사>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지도 사진 출처 : https://lazy-guy.tistory.com/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