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궤적

[곰브리치 세계사 上] 로마 공화국

think-25 2024. 7. 19. 15:21

이탈리아 반도, 로마인
- 농경민족
-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로마인의 나라 small
- 작고 투박하지만 자부심 대단, 자신들의 역사가 고대 트로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
-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에서 이탈리아로 도망쳐 옴, 후손 중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의 진짜 아버지는 전쟁의 신 마르스
- B.C 753 로물루스가 로마 건국
- 왕정 폐지 후 최고 관리 : 집정관(2명)
- 알렉산드로스 세계 재패 무렵(B.C 320년 경) 두 명 중 한 명은 귀족, 한 명은 평민 중에서 선출됨
- 로마인 : 전형적인 농부이자 보수적인 사람들. 식민지 건설보다는 도시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어함
- 성문화된, 글로 명시된 법을 따름. 법과 조국에 관한 한,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강인,엄격

BC 338년 로마 공화국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망 이후,
작은 도시들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에 만족하지 못한 로마인은 이탈리아반도 전체를 정복해 나가기 시작
알렉산드로스 같은 대규모 원정이 아닌, 천천히 도시와 지역을 정복해 나감. 끈질기면서도 흔들림없는 이들 민족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 이탈리아 다른 도시들이 동맹 맺기를 제안하면 받아들였으며, 동맹국이 로마의 뜻을 따르지 않을 시 전쟁 발발, 대게 로마군 승리.
ex) 피로스의 승리
- 남부 이탈리아의 도시 타라스는 피로스(그리스영주)에게 원병을 청함
- 그는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켜 로마 군단을 격퇴, ‘이런 승리라면 두 번 다시 누리고 싶지 않다.’
- 곧 이탈리아반도에서 철군, 로마인이 남부 이탈리아 전역 장악

BC 272년 피로스 전쟁 이후 로마 공화국

포에니 전쟁 (B.C 264~146 세차례)
- 로마군 시칠리아 섬 정복 하고자 함
- 그리스 식민지였으나 페니키아에 예속
- 카르타고
- 페니키아의 식민도시, 시칠리아 섬과 마주봄
- 이곳 포에니인(페니키아인)은 부유, 온갖 나라와 교역
- 시칠리아에서 곡물을 조달
- 시칠리아에서 벌어진 로마군과 페니키아인의 전쟁은 우선 카르타고의 승리로 끝남
- 로마인에게는 배를 만드는 기술조차 없었으나, 좌초된 카르타고의 배 한척을 모방해 두 달만에 전함 여러 척 생산, 결국 로마함대 카르타고군 격퇴
B.C 241, 시칠리아 로마에게 넘김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BC 237년의 로마 공화국 / Carthage 맞은편 세모 반도 :Sicilia

한니발
- 카르타고인은 시칠리아를 빼앗긴 대신 이베리아 반도를 지켜내리라 결심함
- 이베리아반도에 로마인은 없었으나 로마인은 용납하지 않음
- 이베리아반도 카르타고 군대 두준, 사령관의 아들 : 한니발
- 이베리아 반도(에스파냐)에서 코끼리 떼를 이끌고 갈리아를 지나 알프스 산맥에 당도
- B.C 216, 칸나이 전투 로마군 참혹 패배
- 지원병력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음, 약탈 노략질 일삼음. 한니발이 없는 곳에서는 로마인의 승리
- 14년만에 이탈리아를 떠나 고국 아프리카로 돌아감 (스키피오 로마군대 카르타고 진격), 패배

알라딘 eBook <곰브리치 세계사>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B.C 202 : 로마군 카르타고 격퇴
마케도니아 지배 속 내분하던 그리스 정복
200년 전 자신들의 도시를 파괴했던 갈리아 정복, 북부 이탈리아 정복
B.C 146 : 한니발의 도시 카르타고 파괴
로마, 서양 세계 가장 강력한 도시로 부상

BC 146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그리스를 점령한 로마 공화국


로마인은 정복한 지역들을 속주로 삼음. (알렉산드로스 : 정복지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여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
토착민은 엄청난 조세를 지불하고 곡식을 로마로 보냄. 잘 보내기만 하면 나름 평화로움. 고유의 언어, 종교 유지가능
로마인은 도로를 만들어줌 (실용적 측면 : 신속히 소식을 전하고 군대를 파견하기 위함)
로마 수도 설비 시설 훌륭

“나는 로마 시민이다!” 토착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로마인
세계의 실질적 지배자 : 로마군
- 토착민 반항 진압, 거역시 엄벌
- 10년에 한 번 꼴로 북방과 남방, 혹은 동방의 새로운 영토를 정복
- 사령관은 제 2의 제우스가 됨.

속주에서 곡식을 제때 보내지 않으면 종종 기근 발생.
병사와 평민은 그저 먹을 곡식과 흥겨운 축제에 관심을 가짐 -> 제공자를 지지, 표명
- 로마 축제 : 포로들의 격투, 검투, 전투를 관람 (그리스: 귀족들이 직접 경기, 노래부름)

권력싸움
- 마리우스 vs 술라
마리우스 : 아프리카 전쟁, B.C 113 북쪽 킴브리족, 테우토네스족 이탈리아 침입 제지, 패퇴
술라 : 아프리카에서 계속 싸워 개선장군이 됨 -> B.C 79년 까지 로마 제국 지배

로마인은 더이상 농부가 아니었으며, 노예를 부려 토지를 경작
노예들은 물건처럼 취급되고 사고 팔림.
B.C 71 노예 스파르타쿠스 반란 주동, 로마인 간신히 진압. 보복 혹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령관)
- 평민들에게 화려한 축제를 베풀고 곡식을 나누어 줌
- 위대한 군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갈리아(프랑스 땅) 정벌, 로마제국의 속주로 삼음
-B.C 58~51년 까지 7년간 갈리아에서 싸움
- 갈리아인, 게르만족, 헬베티족(스위스인) 에 맞서 싸움
- 두 번이나 라인강을 건너 독일땅까지 진격, 두 번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영국) 침공
-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친분을 맺고 이집트를 로마제국에 통합시킴
- 로마제국 질서 정비, 시간 질서 정리(율리우스력, July)
- 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인물이었으나 친구 브루투스의 시기로 죽음 (B.C 44)

- 양자,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August) (B.C 31~ A.C 14)
- 그리스인의 아름다움을 모방 궁전과 정원을 세움, 당대 로마 시인은 그리스인을 모방

BC 51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종식
BC 27년 아우구스투스 로마 제국의 시작

**
BC 4. 팔레스티나(로마 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로마 관리 폰티우스 필라투스(빌라도) 치하에서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는 혐의로 십자가에 못 박힘 (AC 33)
사도바울의 크리스트교 설교 in 아테네, 로마
- 로마의 관리, 군인, 학자(그리스 교양)는 무시
-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에겐 좋은 소식이 되었으며 곧 로마 제국 전체로 퍼져나감
로마 관리들의 개입
- 유일신을 믿는 크리스트 교도들이 황제의 조각상 앞에 향을 피우지 않음
- 신으로 숭배되는 로마의 황제 제도의 관습을 따르지않음, 강제 수단 동원

AD 60. 로마 황제 네로
- 로마에 큰 화재 발생, 노래를 부르며 즐김 : 평민들의 분노를 삼
- 속죄양으로 크리스트 교도를 지목 ;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금의 세상이 끝내야한다고 이야기함
- 크리스트 교도 박해, 견뎌내며 신앙의 힘을 증명하는 것에 긍지를 느낌, 훗날 순교자들은 최초의 성자로 추앙받음
- 순교자들의 무덤을 순례, 예배. 대낮 공공장소 불가하므로 도성 바깥의 공동묘지에서 비밀 집회를 가짐
- 온갖 박해에도 불구, 이후 1000년간 로마 제국에는 복음을 믿는 자들이 늘어남

- 유대인에게도 냉혹했던 로마제국
- 네로 사후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에 대항하는 반란 발발
- AD 70. 로마군 마침내 예루살렘 탈환
- 예루살렘 파괴되자 유대인 각지로 흩어짐 : 고향 없는 민족이 되어 알렉산드리아, 로마 등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됨. 온갖 멸시와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이교도들 사이에서 기도학교를 열고 오랜 전통을 지키며 성경을 읽고 자신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림


내용 출처 : 알라딘 eBook <곰브리치 세계사>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지도 사진 출처 : https://lazy-guy.tistory.com/696